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4개월을 위해 이사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원래 살던 아파트는 2025년 10월이 계약 2년 연장 만료 시점이었고, 나는 별다른 문제 없이 2026년 3월까지는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주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월세를 전세로 돌릴 거라며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큰돈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솔직히 좀 막막했다. 왜냐하면 이미 8월 말에는 막내 학교 문제로 독일에 가야 했고, 그 사이에 다른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하고, 그 모든 걸 10월 안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에 연락했고, 우리는 독일로 넘어갔다.
9월 중순에 다시 한국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 사이 독일에서 회사와 연락을 주고받고, 집주인에게 사정을 해서 겨우 한 달을 더 연기받았다. 11월에는 반드시 나가야 하는 상황. 그때 나는 독일에 있었고, 한국에 돌아오기 일주일 전 회사에서 문자가 왔다.
“단기간 6개월 월세 아파트 하나 찾았습니다.”
기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뒤에 해야 할 일들이 이미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이삿짐센터부터 시작해서 ‘내가 지금 뭘 먼저 해야 하지?’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이니 하나씩 처리했고, 11월 1일, 우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제 그 집에서 내년 3월까지 살고, 곧바로 독일로 귀국할 예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사를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이미 해외이사 준비에 들어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민하게 된 게 정수기와 공기청정기였다.
이사를 하면 이전 설치를 해야 하고, 4개월 뒤에는 또 해지를 하거나 다시 이전을 해야 한다. 그 과정을 생각하니 솔직히 너무 귀찮았다. 그때 내 기준은 아주 단순했다.
“지금은 편리함보다 단순함이 필요하다.”
우리 집 정수기는 온수는 없고, 정수·냉수·얼음·탄산수 기능이 있는 제품이었다.
사실 우리 가족이 가장 많이 쓰는 게 냉수, 얼음, 탄산수라서 해지를 결정했을 때 가족들의 불만이 컸다.
그런데 그때 나는 정말… 민주주의고 뭐고 없이 해지를 결정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단호했다 싶기도 하다.
해지하고 나니 바로 현실이 왔다. 생수병이 너무 많이 나온다. 36병을 사도 2주를 못 간다. 분리수거도 일이 되고,
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쿠팡 로켓배송에 의존하게 됐다. 그런데 요즘 또 이런저런 이슈가 터지면서 이마저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요즘은 가끔 생각한다.
“그때 그냥 4개월만 참고 쓸 걸 그랬나?”
나도 많이 아쉽다.
그러던 와중에 예전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설거지 물 빠짐 바구니랑 식기세척 비누통을 놓는 바구니를
내가 가져갔다는 거였다. 원상복구를 하든지, 아니면 물어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솔직히 그게 세입자가 쓰라고 놔둔 물건인 줄 알았다. 잘 쓰다가 이사 나오면서 버렸다.
그런데 그걸 문제 삼으면서 장기수선충당금 반환 이야기는 없었다.
결국 나는 그 물건을 새로 사는 비용의 거의 3배를 현금으로 주고 끝냈다. 그리고 지금 이 집에서는, 혹시 몰라서
그런 바구니들을 봉지째 고이 접어 서랍에 모셔두고 있다. 이런 걸 겪으면서 느낀 건 하나다.
알아야 할 일이 정말 많다.
그리고 단기 거주, 해외이사, 귀국 준비가 겹치면 사소해 보이는 결정 하나하나가 생각보다 큰 피로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이 글은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를 추천하거나 해지를 권하는 글은 아니다. 다만 나처럼 4개월짜리 임시 거주를 하면서 곧 해외이사를 앞둔 상황이라면, ‘편리함’보다 ‘덜 움직이는 선택’이 오히려 나를 살려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앞으로 남은 4개월 동안 나는 아마 계속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것 같다.
“이건 꼭 해야 할까?”
“이건 안 해도 될까?”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무언가를 더하기보다는 하나씩 덜어내는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
이 글은 그 시작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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