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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이에서 살다

독일귀국준비 #7 집도 일도 아닌, 우리 가족의 ‘주소’부터 정해졌다

by 만년살이의 작은 기록 2025.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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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귀국을 준비하며, 우리가 가장 먼저 정한 건 집도 일이 아닌 ‘주소’였다

 

 

 

독일로 귀국을 결정하고 나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질문은
“어디에서 자리 잡고 살까”였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이 있는 도시 근처에서, 크지 않아도 우리 네 가족만의 집을 사고 싶었다.
남편은 조기 연금을 신청하기로 했고, 직장 문제에서도 자유로웠기에 그 선택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한 방향으로 우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16년간의 한국 생활 사이 시댁의 환경은 크게 달라졌고, 시어머니는 올해 87세가 되셨다. 도움이 절실한 상태였고, 이미 돌아가신 시아버지 대신 미혼인 둘째 아들이 함께 살며 그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 역시 부담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해왔고, 우리는 그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더 고민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내가 그려왔던 삶의 그림은 백지장이 되었다.
앞으로의 독일 생활은 300명 남짓 사는 시골 마을, 도시의 불빛과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던 내가 상상하지 않던 공간이었다.
방문으로만 알던 시댁에서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고, 그 차이를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귀국 후 우리의 독일 주소는 시댁이 된다.
큰 집을 둘로 나누고 벽을 세워 공간은 분리되지만, 주소는 하나다.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의 삶이 시작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지금의 감정은 솔직히 정리되지 않았다.
집을 사지 않으면서 남은 자금은 보험처럼 통장에 남고, 조기 연금자로 살아가야 할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하면 경제적 여유는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만의 삶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꾸미고 지휘하며 살던 시간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 생활 공간은 달라도 완전한 자유는 아니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큰아이와 방해받지 않고 보내고 싶었던 시간 역시 조율이 필요해진다.

 

이 선택이 옳은지, 필요한지, 감당할 수 있는지는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독일 귀국 후 가장 먼저 정해진 것은 집도, 일자리도 아닌 우리 가족의 주소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주소 하나가 앞으로의 삶의 방식, 관계의 거리, 자유의 크기를 조용히 결정해 놓았다는 것도 함께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것이다.
독일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집 정리도, 일자리도 아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 가족이 어디에 속하게 될지를 정하는 일, 바로 주소 등록이다. 주소 하나로 은행도, 보험도, 행정도 시작되지만 그보다 더 크게는 삶의 반경과 자유의 크기가 정해진다.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우리의 독일 생활은 이 주소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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