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친정엄마는 혼자 사신다.
하지만 혼자라는 말이 완전히 맞지는 않다. 하루의 틈마다 가족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큰오빠는 매일 밤 엄마 집에 간다. 두 편의 드라마를 함께 본다. 드라마 동지다.
매주 화요일이면 큰언니가 하루를 함께 보내며 장을 보고, 세 주에 한 번 있는 허리 주사에도 동행한다.
토요일은 막내 동생 차례다. 하루를 엄마와 보낸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을 크게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구순 노모를 모신다.
내 역할은 조금 다르다.
하루에 두 번, 꼭 전화를 드린다.
점심 식사 후 한 번, 그리고 오후 동물의 왕국이 시작되기 전 한 번.
화요일과 주말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그날은 이미 말동무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전화는 그냥 안부 인사가 아니다.
만원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콩나물 2천 원어치 사고, 엄마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3천5백 원어치 사면 얼마가 남는지 묻는다.
오늘은 몇 일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묻는다.
약통을 힐끗 보며 요일을 맞히시면, 우리는 다 같이 웃는다.
큰오빠는 매일 밤 다음 날 먹을 약이 들어 있는 서랍을 미리 열어 둔다.
그러면 엄마는 열린 서랍의 약을 드신다.
설명도, 설득도 필요 없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요즘 나의 고민은 이것이다.
독일로 돌아간 뒤에도, 이 하루 두 번의 전화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시차는 맞출 수 있다. 문제는 국제전화 비용이다.
인터넷 전화가 가장 좋지만, 엄마의 휴대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사드린 적도 있었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하지만 결국 모두 다시 폴더폰으로 돌아왔다. 익숙함이 가장 큰 기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엄마 집에 형제자매가 모일 때를 이용해, 무료 인터넷 전화를 해보는 연습이다.
독일에 있는 큰아이와는 Signal로 통화하고, 한국에서는 카카오톡 전화를 쓴다.
사전 연락 없이 갑자기 카톡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이게 뭐야?”
“어디를 눌러야 해?”
처음엔 다들 당황했다.
카톡 벨소리가 울리면, 전화기가 아니라 엉뚱한 곳을 쳐다본다고 했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났다.
지금은 모두 적응했을까?
아니다. 여전히 복잡하고, 여전히 헷갈린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있다. 석 달 남짓.
그동안 나는 무료 인터넷 전화로 형제자매들을 계속 놀래키고, 당황하게 할 생각이다.

사람은 이미 익숙한 것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불안해진다.
그게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연습은 통화를 위한 연습이 아니라, 불안을 줄이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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