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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살이의 일상 수집

한국에서 보낸, 마지막일지도 모를 크리스마스 이브

by 만년살이의 작은 기록 2025.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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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5시 반에 눈을 떴다
이 기상 시간은 독일에 살 때부터 계속 유지되고 있다. 바이오 시계라고 해야 할까!

 

트리에 전선을 꽂고 창문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잔뜩 불어넣은 나만의 아티스트 전구 잔치에 불을 켰다.
아직 어두운 창밖과 반짝이는 불빛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오늘은 성탄절 이브
이브 분위기에 맞게 아침을 먹기로 우리 세 가족은 이미 합의를 끝낸 상태였다.
원래 우리 부부는 아침을 먹지 않고 커피 향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모닝커피를 먼저 내려 한 모금 마시고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팬케이크 반죽을 하고
달걀 스크램블을 준비하고
미리 사서 냉동고에 넣어 두었던 Brötchen을 꺼내 해동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버터를 실온에 두고
살라미를 슬라이스하고
치즈와 꿀, 잼을 꺼냈다

 

 

 

식탁 세팅이 거의 끝나갈 즈음 크리스마스 초콜릿과 쿠키를 크리스마스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늘 그 자리에 있는 펭귄과 눈사람 부부 옆에 놓아 두었다.

그들은 TV를 보는 우리의 오래된 친구인데, 이 노래하는 부부는 아이들이 일곱 살, 두 살이던 시절 독일에서 살 때 치보(Tchibo)에서 샀었다
“ “I wish you a Merry Christmas.”  를 부르며 몸짓을 하는 모습이 여전히 우리를 웃게 한다.

벌써 몇 년이 된 걸까 20년쯤 되었을까!

눈사람 아저씨는 이제 더 이상 몸짓을 하지 않는다.

너무 안타까워  남편에게 고쳐 달라고 부탁했는데 “응, 알았어”라는 대답만 몇 년째 듣고 있다.

 

 

이브 이벤트로 〈아바타: 물의 길〉을 보고 왔다.

3시간이나 되는 긴 영화였고, 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본 아바타는 정말 ‘ Blockbuster ’ 라는 말이 잘 어울렸던 영화이지 않을까!

CGV의 앞 스크린, 좌우 스크린까지 펼쳐지는 화면이 처음엔 조금 어지러웠는데 

다행히 효과는 잠깐씩만 사용되어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만 맴돌았다.

“이거 애니메이션이지? 사람 아니지?”

막둥이와 남편이 “사람이야”라고 말해줘도 “정말이야?”를 몇 번이나 되물었다. 배우가 분장하고 CG 효과로 만든 영화라는 말을 듣고 진짜 놀랐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인간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막둥이 요리 "터키식 파스타"

 

성탄절 이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저녁 만찬과 트리 아래 놓인 선물들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은 생일이나 성탄절 같은 날이 오면 당사자가 갖고 싶은 선물 다섯 가지를 적어 냉장고에 붙여 놓는다.

그중 하나나 두 개를 골라 선물로 주는데 싼 선물이면 두 개, 비싼 선물이면 하나..

갖고 싶은 걸 받을 수 있고 다섯 개 중 무엇이 올지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이 방법이 꽤 실속 있다고 생각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큰아이 선물은 현금으로 날아가서 본인이 사고 싶은 옷을 사기로 했고 우린 큰아이가 **에서 주문한 선물들을 받아 아이가 하듯 나는 정성껏 예쁘게 그녀 대신 포장을 했다. 우린 서로의 존재와 아쉬움을 선물 교환식 사진들로 대신했다.

 

남편의 Glühwein 과 막둥이의 쵸코로 쌓인 딸기와 포도

 

저녁 만찬은 막둥이와 내가 각각 하고 싶은 걸 만들고 남편은 Glühwein 을 맡았다.
정신없이 웃다가, 잠깐씩 짜증도 내고, 그렇게 완성한 우리의 합작품은 모양새가 어떻든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설거지는 결국 내 담당이었지만 그 많은 양의 그릇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해냈다.

 

2025년 12월 24일, 화이트 이브는 아니었지만 막둥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우리 부부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며
“계속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조용히 나눴다.

 

한국에서 당분간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나는 추억 만들기의 한 장으로 조심스럽게 간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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