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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이에서 살다

독일귀국준비 #11 / 새 노트북을 샀을 뿐인데 독일 귀국준비는 또 마음부터 흔들렸다

by 만년살이의 작은 기록 2025.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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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귀국준비 #11/ 새 노트북이 도착한 날


 

 

 

귀국 준비 목록은 아직도 해야 할 일, 처리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잘 안 가는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기기 정리였다.

“엄마, 언제 핸드폰 바꿀 거야? 시간 없는데…” 막둥이의 재촉이다.

 

 

 

자기도 귀국 날짜가 다가오는데, 엄마는 왜 이렇게 느린지 답답한 모양이다. 사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할 때가 종종있다. 

아마 속으로는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하는 조바심이 쌓이고 있을 것이다.

결국 그 조바심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이번엔 내가 아니라, 남편과 막둥이가 한 건을 처리해버렸다.

노트북을 새로 구입한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은 전원을 켜면 부팅과 함께 “찡~~~”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화면이 켜진다.
몇 달째다.
처음엔 왜 이러지 싶어 걱정도 했지만, 나는 노트북을 ‘쓰는 사람’이지 ‘아는 사람’은 아니다.

속도감 있게 쓰고, 친밀하게 일하지만 노트북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정말 백지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남편이 셋팅해 주면, 나는 그저 컴퓨터와 하나가 되는 사람이다.

 

일주일 전,
“잠깐 노트북 가져가서 봐야겠어” 그 말과 함께 남편은 나의 오랜 친구를 가져갔다.

그동안 계속 들었던 말이 있다. 중요한 문서 백업해 두라는 말. 나는 늘 듣기만 하고 흘려보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노트북이 완전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백업해 놨지?”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됐다. 데이터, 문서, 작업 파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정신이 멍해졌다.

“그래… 그런데 왜 갑자기 노트북을 가져가서…”
“왜? 안 해놨어?”
그리고 이어진 남편의 익숙한 외침.
“Oh mein gott (맙소사)”

 

하루 종일 분해된 노트북과 씨름하며 어떻게든 문서를 되살리려는 남편을 보면서 남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보름 전에 백업해 두었던 USB와 Dropbox를 열어보며 “이거라도 해 놔서 다행이다…” 그제야 숨을 조금 돌렸다.

 

그리고 저녁 무렵, “이리 와봐. 다시 복구했어.”

분해했다가 쓰레기통에 버리자던 나의 오래된 친구에게 어떻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트북은 다시 “찍~~~” 소리를 내며 부팅됐고 문서들은 그대로 거기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도 나는 다시 그 ‘찍 소리’를 내는 친구에게 몰두했다. 그리고 ‘백업’이라는 의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때 막둥이가 말했다.
“엄마, **에서 구매도 판매율 1위인 거 주문했어, 가격도 괜찮고, 사양은 아빠랑 다 체크했으니까 주문해.”
“응. 오늘 주문해?”
“엄마… 정말…!!” 약간 짜증 섞인 막둥이를 보고나서야  “알았다니까…”
나는 친근한 미소로 답했다.

 

 

 

새로운 친구가 될 노트북이 도착했지만 나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두었다.
그러자 또 그 팀이 나섰다. 포장을 뜯고, 확인하고,

“자, 오늘은 셋팅 좀 하자.”

새 노트북은 나의 오랜 친구를 옆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딱 하나만 해. 나 이거 끝내야 하거든.”

 

독일로 넘어가면 이상하게 많은 일들이 복잡해진다.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없고, 사고 나서도 한국식이 아닌 방식에 시간과 에너지를 계속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짜증이 나고, 그런 일들이 반복된다.

이게 16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아직도 나는
독일이라는 사회와 문화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아직도 이방인으로 헤매고 있는 건지,
아니면
‘독일인이 사는 동네에서는 독일인처럼 살라’고 요구하는
그 이기심에 반발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아마도...
한국을 떠난다고 독일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독일에 산다고 한국을 잊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사람이 되려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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