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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이에서 살다

독일 귀국 준비 #12. 올란도와 레이를 보내며...

by 만년살이의 작은 기록 2026.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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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너스 이글이라는 이름의 시작

한국에 와서 중고차 매그너스 이글을 구입했었다.
회사에서 회사차를 준다고 하는데도 남편은 거절하고 중고차를 고집했다.
사실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됐다. 회사차를 준다는데? 왜?

회사차도 리스를 하는 거고, 그 리스 비용은 어차피 우리 몫이며 회사는 보조를 해주는 정도란다.
그래서?
비용은 어차피 들어가는데 우리 차를 사서 모는 게 마음 편하다는 남편의 말이었다.

그런가.
뭐 그렇다면… 하고 더 신경 쓰지 않았었다.


중고차를 사랑하는 사람

그런데 집에 배달된 차는 10년이 훌쩍 넘은 매그너스 이글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남편의 중고차 사랑은 연애할 때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중고차를 가지고 노는 것을 즐기고, 그 시간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행복하다는데. 그리고 중고차라 하더라도 무사고 경력으로 가족의 애마로 만들기 위해 그만큼의 시간과 애정을 쏟고 있으니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떠나는 차를 보지 않겠다는 사람

매그너스 이글과의 작별은 나 역시 마음 한켠이 아렸고, 남편은 떠나는 차를 보지 않겠다며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오지 않을 정도였다. 끌려가는 이글을 보며 “만나면 헤어짐이 있는 거지…” 혼잣말로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오니 남편은 이미 이글 대신 새로 구입한 올란도 중고차 정보를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캐고 있었다.


올란도와 우리가 다닌 길

남동생에게 부탁해 수원 중고차 매장까지 가서 계약한 차, 벌써 8년 전 이야기다.

900만 원에 구입한, 연식으로만 보면 벌써 열두 살이 된 그 분. 올란도는 디젤이고 LTZ가 아닌 LT다.

하지만 남편의 끝없는 노력과 사랑 덕분에 우리 가족은 올란도 애마와 함께 오토캠핑을 다녔고 한국의 전국을 돌았다.

 


나의 애마, 레이

그리고 나의 애마 레이도 중고차로 구입했다.
당시 연식 2년, 신생아에 가깝다고 해도 될 만큼 새 차였다.

남편의 고뇌가 있었을 터이다. 차에 대해 까막눈인 내가 발 브레이크를 해 놓고 차가 안 나간다며 고장 난 것 같다고 전화하는 사람인데, 어찌 그런 나를 믿고 10년 넘은 중고차를 사주겠는가. 정말 고맙기 그지없었다.


떠날 준비를 하는 마음

이제 두 달 후면 독일로 귀국이고 우리는 올란도와 레이를 보내야 한다.

벌써부터 마음이 아리다. 왜 독일엔 레이가 없는 걸까. 나는 레이가 너무 좋다.

“우리 레이를 컨테이너로 보낼까?”
내 말에 남편이 지은 그 어이없는 표정이 너무 웃겨서 한참이나 웃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거지.”


그냥 주는 게 맞을까

다행히 남동생이 올란도와 레이를 달라고 했다.

올란도는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하면 초보자용으로 괜찮을 것 같다 하고, 레이는 올케의 모닝이 오래돼서
바꿔주려 했는데 내 레이로 바꿔주는 것도 좋겠다며 달라고 했다.

 

올란도는 연식도 오래됐고 900만 원에 샀으니 팔아봐야 얼마 받겠냐며 남편은 그냥 선물로 주자고 했다.

하지만 레이는 1000만 원에 구입했고 중고차 업체에 물어보니 연식도, 주행거리도 괜찮아 600만 원은 받을 수 있단다.

레이는 그냥 팔자는 남편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사실은… 둘 다 그냥 주고 싶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불안

그런데 문득 “오래된 디젤차는 서울에 진입을 못 한다”는 기사가 머리를 스쳤다.

이걸 어쩌나. 이미 준다고 말했는데 폐차하라는 차를 주는 꼴이 되는 건 아닐까.
머리가 쭈뼛해졌다. 인터넷에 ‘노후 경유차 서울 진입’을 검색하니 4등급 경유차는 서울 사대문 안 운행 제한,

2030년부터는 서울 진입 금지…

 

지금이 2026년이지?
그럼 우리 올란도는 몇 등급인 거야?


뜻밖의 안도

다시 검색. ‘노후 경유차 등급 조회 방법’. ‘자동차 배출가스 종합전산시스템’에 들어가 ‘소유 차량 등급 조회’를 누르고
휴대폰 인증을 하니…

 

이럴 수가.
우리 올란도는 3등급이었다.

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가.

 

곧바로 동생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하며 “그래도 가져갈 거야?” 하고 물었다.

“아니, 그런 게 있었어? 그 올란도 조선에서 오신 분이야?”

 

너무 웃기고 황당해서 한참을 웃었다.
그런 연세 드신 올란도 분을 모시고 여태 타고 다녔던 거였다.

얼마나 허리가 아프시고 다리가 아프셨을까나.

 


먼저 떠나는 것들

그렇게 우리의 올란도와 레이는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작별을 연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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