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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살이의 일상 수집

내가 느끼는 거리의 단위 "체감거리"

by 만년살이의 작은 기록 202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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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라는 말이 있다.
내게는 그 말보다 먼저 떠오르는 게 하나 있는데 , 그게 ' 나는 거리도 체감한다' 이다.

 

오늘 미용실에 갔었다.
언니가 묻는데,  “어느 미용실 가니?” 이사 오기 전부터 다니던 곳이라고 했더니 “멀지 않아?” 하고 다시 묻는다.

얼마나 멀어? 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10분”

 

사실은 버스로 최소 35분 걸린다하고, 지도는 친절하게 노선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입에서는 10분이 나왔다. 거짓말도 아니고, 숨길 이유도 없었다.
그냥 내가 느끼는 거리가 그 정도였을 뿐이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새치가 시작됐고 지금은 미용실 원장 말로는 흰머리가 70%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3~4주에 한 번씩 꼭 뿌리염색을 하러 미용실에 간다.

예전에 살던 집 근처 미용실은 염색과 커트에 6만 원대, 해가 바뀌자 5천 원이 더 올랐다.
그래서 조금 더 저렴한 곳을 찾게 됐는데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곳에 작은 미용실 하나가 있었다.

 

“저렴하고 친절해요”
“할머니 집에 온 것처럼 편해요”
리뷰가 그랬다

 

들어가 보니 정말 노부부가 운영하는 미용실이었다.
할머니가 미용사였고 할아버지는 머리를 감겨 주고 청소를 하시는 조수 역할 담당이신가보다.

 

“염색하고 머리 정리만 할게요”
그렇게 시작됐다

 

만약 옛날에 다방이 있었다면, 이 미용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딱 맞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편했다.

 

 

 

“우리 점심 먹을 건데 같이 먹어요”


그 말이 얼마나 사랑방 같았는지, 할아버지는 사과를 깎아 오셨고  사과 알레르기가 있어서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손길은 느리고 투박했고, 가끔 가위가 무딘지, 머리카락이 콕 찌르기도 했다. 보자기를 목에 두르실 때는 숨이 막힐 만큼 꽉 매셔서 컥컥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가격은 예전 미용실의 3분의 1 !

“너무 싸게 받으시는 거 아니에요?”
“혹시 60 넘었나? 그럼 만 원인데”

순간, 사회적 협동조합인가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3주마다 그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하고, TV를 보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카드도 되지만 가능하면 현금으로…” 말끝을 흐리시는 걸 보고 다음부터는 꼭 현금을 챙겼다.
계좌이체도 된다 하셔서 보낼 때마다 조금 더 보낼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서 말씀하신 금액만 보냈다.

 

그래서
버스로는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지만 내가 느끼는 거리는 10분도 채 되지 않는다.

거의 비어 있는 버스에 앉아 내 차처럼 편히 가면서 창밖의 사람들과 거리 풍경을 그냥 눈에 담는 시간

그 시간은 이동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 같아서...

 

독일로 돌아가면
나는 이런 시골 시장 같은 정겨움을 기억 저장소에서 꺼내 오늘의 이 느낌을 다시 불러올 것이다

 

그래
이건 나만의 체감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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